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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글을 곧잘 쓰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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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0 18:37:42
너는 글을 곧잘 쓰니까...rdquo

사람들은 나에 대해 오해한다. 공문서도 곧잘 만들거라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으레 그렇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난 그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예외'에 속한다. 어쩌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의 시간이 흘러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때 운 좋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하나 구했다. 사무실에 앉아 잡일을 하는 정도였고, 보수라고 해봤자 80만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한 달 수입 제로 행진을 거듭하던 나에겐 그마저도 감지덕지였다. 봉투 붙이기, 전화 돌리기 등 딱히 의미라곤 찾기 힘든 일을 하던 나에게 어느 날인가는 무슨 이유에선가 문서를 편집하는 일이 주어졌다. 수합된 원고들을 순서대로 갖다 붙여 하나의 책 형태로 만드는 매우 단조로운 작업이었다. 무료함을 달래겠다며 갖다 붙이던 글을 대강 훑던 나는 모 단체의 대표 명의로 된 축사를 읽고야 말았다. 글의 수준이 너무도 조악했다. 누가 작성했는지 모르지만, 설마 대표가 직접은 아닐 것이다, 이대로 책자에 실었다가는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아르바이트생 주제에 오지랖을 발휘해가며 글을 다듬었고, 사람들은 그날 이후로 날 바라볼 적이면 '얘 좀 글 쓰는 애'라는 눈빛(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왠지 그리 느꼈다.)을 하고 바라봤다. 날 너무 믿었던(?) 누군가는 기안문을 하나 작성해 보라는 명을 하기도 했는데, 그게 뭔지, 어떻게 작성하는 건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그를 바라보는 것으로 응수하고야 말았다. 그 때 트라우마가 생겼던지, 매일 일기를 쓰고 책을 읽는 족족 글을 남김에도 사무실에서 공문서를 작성할 때면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헛돌 때가 잦다.

베끼고 고치고 베끼고 고치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난 모방의 '미음' 이상은 나아가지 못한 게 벌써 여러 해다. 원래 모범생은 주어진 과제를 행하는 데 충실하기 나름이라고, 달리 말하자면 응용은 못한다, 내 자신을 변호해 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자신은 없어 보일 따름이다. 그냥 이게 나의 한계라며 수긍하는 게 차라리 멋지다는 평을 듣지 않을까란 헛된 기대감에 기대어 오늘도 난 누군가가 이미 생산한 문서를 따라하기에 급급하다.

슬프지만, 어디 내놓기에 민망한 공문서 작성이 그나마 나로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다. 내가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성격이 활달해진다거나 초강력 긍정적 사고를 매번 하는 인물로 돌변할 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가락, 발가락, 계산기, 엑셀, 다 동원해도 틀리는 숫자 계산에 능통해지는 일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미련을 100% 버렸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지금은 그래도 안 되는 분야라면 과감히 접어야 한다며 내 자신을 설득하고는 한다. 그나마 할 수 있을 걸로 보이는 분야를 공략하는 게 낫다는 이유를 덧붙이면서.
-글은 이리 쓰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나의 상황은 심각하다. 접자고, 접어야만 한다고 내가 주장하는 것들이 사회 생활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필수에 가까운 무언가기에. 그렇다. 나의 단점은 치명적이다. 남들은 치명적인 매력을 지녀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던데,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이미 '보고서의 정석'이라는 제목의 책을 구입해 사무실에 비치해 놓았다. 머리가 하얘지고 컴퓨터 화면에 무얼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싶을 적이면 들춰보곤 한다. 이번에 또 책 몇 권을 구입했다. 남의 것을 열심히 보기만 해선 곤란하다. 그건 영원히 남의 것에 불과하다. 정말 잘 하고 싶다면 나만의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구입한 책이 남들과 차별화된 '나'로의 도약을 가져다 주진 못할 것이다. 그럴 거라 믿었다면 그건 알량함에 불과하다. 나름 열심히, 성실하게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고, 그와 같은 마음이 너무도 큰 나머지 다른 이들의 너무도 쉬워 보이는 인생을 미워하고는 했었는데, 알고 보면 나 또한 매 순간 날로 먹으려는 심보로 무장한 존재에 불과하다. 이토록 이중적이어도 괜찮은가. 내 얕은 마음이 날 망치는 주범임을 잘 알면서도 왜 그와 같은 수작(!)을 난 매번 부리는 걸까.

이번에도 이내 깨닫고야 말 것이다. 그럴지라도...
해도 안 되는 여러 분야에 '글쓰기'가 추가될 수도 있다는 악몽이 부디 악'몽'으로 그치길 바란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글 좀 쓴다는 사람은 공문서도 어렵잖게 만든다'는 오해가 확신으로 굳어지기를. 노력 중이니까. 되든 안 되든, 늘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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